시골의사 부자경제학

2007. 6. 19. 11:38사소한 이야기들/잡동사니

20년 전에 ‘투자의 시대’를 예측한 시골의사

흔히 “먹고 살기 바쁜 세상”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자신과 가족을 위한 밥벌이만으로도 우리들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간다. 때문에 1인2역을 해내는 투잡족들은 동경의 대상이다. 특히 학창시절부터 간직해왔던 순수한 열정이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며 투잡을 실현하는 이들은 요즘 대학생 누구나가 꿈꾸는 적절한 역할 모델로써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 카미가 만난 시골의사 박경철(41) 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안동에서 유명한 외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동시에 투자 분야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분석가로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그가 쓴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은 쏟아지는 재테크 서적 중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바쁠 줄만 알았던 그는 시간을 쪼개서 충분히 여유있게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간관리 전문가인 스티븐 코비가 이야기했던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만이 인생의 진정한 승자이다.”라는 대목이 절로 떠오른다.
“대학 시절, 불안했던 모습에 과연 지성인으로써 미래 사회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당시에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투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위 386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학생운동을 통해 직접 암울했던 사회 현실에 부딪히거나, 미래 사회를 위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활동에 매진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오늘날 사회가 자본 경제를 바탕으로 한 투자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 당시 함께 관심을 가졌던 지인들과 국내 최초로 만들었던 투자 관련 모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축척할 수 있었고, 오늘날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쓰여진 각종 실물경제에 대한 그의 논평과 예상은 인터넷과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경제 동향을 분석하는 사람들의 예측이 현실에서 그대로 들어맞는 일도 불가능하다고 봐야지요. 시장 경제에서 예측은 예측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는 경제 상황에 이론에 근거한 예측을 실제 상황에서 너무 믿어버리는 것에 대한 염려를 나타내었다. 전문가가 알려준 그대로 투자를 통해 돈을 벌게 된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주의 시장은 존재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 전문가로 전향해도 괜찮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의사라는 본업이 제게는 가장 맞는 일이거든요” 30대까지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는 그이지만, 진료실을 거쳐 간 환자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어주는 의술에 대해 긍정적인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구상에 수많은 직업 가운데 가장 좋은 직업을 택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의사를 택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진 기술을 베푼다는 의미에서 의술을 펼치는 의사는 확실히 매력적인 직업이다.

이날의 인터뷰 내용은 어느 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분야의 경계를 동시에 뛰어 넘었다.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그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폭넓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한다.

“경제학은 물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망라한 모든 분야를 폭넓게 공부해야 합니다. 물론 약간 힘에 부칠 정도로 수준있게 공부하는 게 좋지요”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독서로서 그는 학문 전반에 관한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느꼈지만 분야를 막론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실로 놀라웠다. 경제 현상에 대한 분석을 부탁했을 때에도 그는 비단 경제적인 측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러 분야를 망라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자칫 딱딱할 수 있는 화제에 있어서도 그는 약간의 위트를 잃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거시적 안목으로 책을 읽어온 그의 포괄적인 소양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다시 대학 생활로 돌아가서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가능하다면 제대로 된 연애도 한 번 해보고 싶네요” 굳이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그의 눈빛만큼은 여전히 패기 있어 보인다. 불혹을 넘긴 나이임에도 그의 생각과 가슴은 20대에 가지고 있던 바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전반적으로 인터뷰 내내 그의 눈빛은 열정적인 무언가로 빛나고 있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넘어선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지적인 자신감과 열정이 어우러진 삶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동안 그의 모습에서 내가 바라고 꿈꾸어오던 이상적인 역할모델을 그려볼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앞으로 직업으로 삼을 일은 취미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흔히 ‘현실에 적응한다’는 표현으로 애써 자위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매워 줄 매개체를 찾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는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후회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통해 젊은 날의 취미가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현실과 미래 모두를 아우르는 폭넓은 시각을 가지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저는 20년 전에 남들이 생각지 못했던 ‘투자’遮?개념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투자 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들이 경제 주체가 되는 20년 뒤는 현재의 투자 자본이 붕괴될 것이므로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투자’라는 화두에 매달리는 것은 앞선 사람의 20년 전 생각을 답습하는 데 불과하니까요”

그의 마지막 말은 한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교훈과 희망이 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자신의 전공을 넘어선 폭넓은 독서와 그를 통한 미래 사회의 예측, 그리고 거기에 부합하는 자기 본연의 취미와의 합일점을 찾는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준비된 자들에게 ‘투잡족’은 더 이상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 앞으로 펼쳐질 바로 자신의 모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