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물고기

2008. 11. 28. 10:11사소한 이야기들/영화

 

황야의 물고기 

 

물고기가 있었다

물고기는 자신이 깊은 강물 속에서 태어난 줄알았다

얼마나 자랐을까

어느 날 물 밖으로 눈을 내밀어 바깥 세상을 보았다

황야였다

거칠고 황량한 사막 한 쪽

말라붙은 강바닥

그 얼마 남지 않은 물에서 자신이 퍼덕이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순식간에 물은 말라갔다

금새 강물은 바닥을 보이고

물고기는 햇볕 아래 노출되고 말았다

몸이 바짝 말라왔다

물고기는 누을 감았다

이렇게 자신이 죽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상한 소리들이 들렸다. 눈을 떴다

버스정류장

물고기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극"황야의물고기"中 

 

[리뷰] 서부로 간 [황야의 물고기]

영웅이 되고픈 우리들의 이야기
 
김윤정 기자
▲ 연극 [황야의 물고기](연출 권호성)의 공연 장면     © 사진=소극장모시는사람들
그럴 때가 있다. 이상세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때로는 영웅으로 때로는 악당으로. 영화의 주인공은 왠지 모든 걸 짊어져도 힘든지 않은 것 같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꿈을 꾸었을 것이다.
 
연극 [황야의 물고기](연출 권호성)는 서부시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안관이 있고 악당이 있다. 영화에서만 보았던 그 장소이다.
 
무대는 놀음판이 한창이다. 그리고 사기 놀음으로 한판 총싸움이 벌어진다. 그리고는 우리의 영웅 보안관 ‘존’이 나타난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혀 짧은 발음으로 진중하기 보다는 웃음을 유발하는 놀음꾼이나 존이 등장할 때마다 과장된 몸짓으로 기쁨의 환호를 지르는 창녀 나타샤도 한바탕 웃음을 만들어낸다.
 
보안관 ‘존’은 성우같은 목소리로 한껏 분위기를 잡는다. 하지만 별안간 ‘이병석 나와’라는 앙칼진 목소리가 들린다. 서부시대(술집 이름)의 집주인이 등장한 것이다.
 
무대는 분명 서부 어느 술집이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여인으로 이곳은 한국의 어느 술집으로 탈바꿈한다. 한창 어리둥절한데 이제는 밀린 월세를 내놓으라고 고함을 친다. 과장된 그들의 몸짓과 진지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웃긴 그들은 서부놀이가 한창이다.
 
‘서부시대’에서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주인공으로 그들만의 세상을 다시 살고 있다. 그들은 존, 요셉, 잭, 나타샤 등이 되어 자신의 역할을 다 한다. 그 안에서는 그들은 전업주부도 건달도 전파상주인도 아니다.
 
서부에서 그들은 악당을 물리치고 그들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다. 하지만 존, 아니 이병석은 자신의 부인을 보고 잠시 흔들린다. 대본을 쓰고 있던 그는 존이 아닌 악당 빅터의 승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에 모두 격분하고 다시 하자고 술렁인다.
 
그 때 나타난 존의 부인은 아직도 서부놀이를 하고 있는 남편이 한심하다. 2년 동안 집을 나가 처자식을 버리고 서부시대에 빠져 사는 존을 보면 설움이 밀려든다. 비로소 밝혀진 비밀, 그녀의 불륜을 알고 집을 뛰쳐나와 세상과 등 져버린 가엾은 존은 그렇게 영웅의 자리를 내놓는다.
 
서부에서의 영웅 존을 비롯해 그들은 모두 사회에서 소외되고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이다. 시린 바람이 부는 요즘에 가슴 깊이 파고드는 소재다. 돈과 시간, 사람들에 찌들어 힘겹게 사는 우리가 꿈꾸는 일탈은 소박하지만 힘들다.
 
작품은 메시지를 진중하게 담아내고 있다. 지루하지 않게 적절한 폭탄 웃음과 함께 말이다. 실력있는 배우들이 외화를 보는 것처럼 밀도있는 연기로 실제 서부에 온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개성강한 캐릭터들은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그들의 아픔이 가슴으로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바탕 웃음으로 정신이 없다가도 그들의 아픔이 내 아픔인양 진지해진다. 이것이 좋은 연극이 주는 카타르시스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 그들은 서부시대의 에너지를 잃는다. 가엾다. 그들은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서부시대에서는 누구보다 멋진 주인공이다. 과연 나의 서부는 어디인가.
 
여운이 남는다. 이야기가 남는다. ‘물고기는 자신의 깊은 물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다. 수면으로 올라와 밖을 보니 밖은 황야였다’.
 
앙코르 공연으로 다시 찾아온 연극 [황야의 물고기]는 내년 1월4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에서 공연된다.
        
[공연정보]
공연명: 연극 [황야의 물고기]

작:선욱현
연출: 권호성
출연: 진남수, 주유랑, 선욱현, 정래석, 김정호, 신문성, 정상훈, 문상희, 하유미, 이문준
공연일시: 2008.11.17 ~ 2009.3.1
공연장소: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
공연가격: 1만 5천원
공연문의: 02-741-6489
 

(문화전문 인터넷 일간지 뉴스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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