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 3일- 08월 11일 수요일 -이스탄불

2010. 7. 14. 23:59사소한 이야기들/여행

호텔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 푸른 타일로 각기 독특한 문양을 갖춘 슐탄 아흐멧의 사원 블루 모스크

 

 

 

 

 

 

블루 모스크(술탄아흐멧 모스크 SULTAN AHMET MOSQUE)

오스만 시대에 지어진 직경이 27.5m, 높이가 43m에 다다르는 술탄아흐멧 모스크는 규모면에서 터키 최대의 것으로, 맞은편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 양식을 모방, 발전시켜 건축한 독특한 형상의 회교사원이다. 그 내부의 벽과 기둥이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리워지고 있다. 돔의 200개가 넘는 조그만 창은 스태인드 글래스로 장식되어 있어 이를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오벨리스크와 뱀기둥이 서 있는 히포드럼

 

히포드럼(HIPPODROME; 마차경기장) .. HIPPODROME
본래 이곳은 196년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Severus)에 의해 지어진 검투 경기장이었는데, 4세기 무렵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 경기는 금지되고 대신 말이 끄는 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10만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고 하는 이곳은 경마장으로 이용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13세기 초 십자군의 침입으로 이 광장에서 비잔틴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 대부분의 광장 내 유적이 이때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곳에는 아주 귀중한 세 개의 기념비가 잘 보존되어 있다.

"디킬리타스(Dikilitas)"라고 불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원래 기원전 1550년에 메소포타미아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로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헌사한 사원에 세워졌었던 두 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로 당시 왕족들의 일상을 양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도 콘스탄티누스의 기둥이라고 알려진 "오르메 수툰(Orme Sutun)",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세 마리의 뱀이 서로 뒤엉켜 직경 3미터의 황금 그릇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셀팬타인 기둥(Serpentine)이 있다.


[블루모스크 및 히포드럼 관광-약 1시간 소요]


♣ 약 5000여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는 그랜드바자르 등을 관광합니다. [약 1시간 소요]

 

 

 

 

 

 

 

 

 

 

 

 

 

 

 

 

 

 

 

 

 

 

 

 

 

 

 

 

 

 

기타 자료 검색 : http://blog.naver.com/jangyah/92348285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folder=18&list_id=8401752&uid=listmin

 

 SUR BALK식당 -양갈비 특식▒
이스탄불 오스만 제국시대에 장군의 집을 개조하여 만든 식당으로 터키 대통령 및 유명인사들이 즐겨 찾는 고급 레스토랑입니다. 터키 전통식 양갈비를 즐겨보세요~

 

고급 레스토랑에서 양갈비 특식으로 점심식사 후

 

♣ 이슬람 제국의 왕들의 헌상품이 가득한 톱카프 궁전(보석관 포함) [약 2시간 소요]

술탄들의 거주지,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

보스포라스 해협의 높고 평평한 곳에 위치한 7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톱카프 궁전은 1453년, 오토만 제국의 술탄인 메흐멧이 이스탄불을 차지하게 되면서 처음 건설되어 그후 4세기 동안 꾸준히 그 규모를 확장시켜 나갔다. 그 결과 오늘날 이 곳은 15세기-19세기 초까지의 오투만 건축양식의 변화된 모습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톱카프 궁전은 원래 오투만 제국 대대로 술탄 군왕들이 거처했던 성으로 한때 이 곳에는 술탄과 그 가족 외에도 5만명이 넘는 시중들과 군사, 관료들이 거주했었다고 한다.

옛날 요리를 만들었던 곳은 지금은 도자기 박물관이 되었고 보물고에는 술탄 군왕들이 사용했던 옥좌, 면류관, 무기, 생활용구, 왕비나 여자들이 사용했던 장신구가 전시되어 있으며 터어키 각지에서 미녀를 모집했던 할무, 신관(후궁의 시중을 드는 남자)의 방도 보존되어 있어 그 흥미를 더한다.

 

 

 

 


♣ 거대한 터키-그리스 양식의 돌마바흐체 궁전 관광 후[약 1시간 소요]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CE PALACE)

가득찬 정원이란 뜻의 돌마바흐체 궁전은 해변을 흙으로 메꾸고 세운 곳이다. 50만 금화, 즉 현재 돈 5억불에 맞먹는 기금으로 건립된 이 궁은 1856년 완공되었는데, 궁의 내부 장식과 방들을 꾸미기 위해 총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3층의 대칭구조로 지어진 궁의 내부에는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 280개의 화병, 156개의 다양한 시계, 4톤과 2톤 중량의 샹들리에를 포함한 36개의 샹들리에, 58개의 크리스탈 촛대, 560점 이상의 그림, 손으로 직접 짠 대형 카페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급격히 악화되어가는 시점에서 이를 만회하고자 서구화를 추진하고 국력 쇄신을 도모하던 압두메짓 1세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 초호화판으로 이 왕궁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결국 막대한 건축비 지출은 어려웠던 왕실 재정을 더욱 악화시켜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전세선*으로 유람하고 [약 1시간 소요]

마르마라해에서 흑해까지 약 30Km의 해협은 좁은곳이 약 660m 밖에 되지 않으며 터키어로는 보아지치라고 불리우는데

아시아와 유럽을 구분짓는 거대한 수로이자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언듯 보아서는 바다라기보다 한강쯤되는 큰 강을 거슬러 오르내리는 유람선으로 보여진다.

현재는 보스포러스 대교와 파티 대교가 걸쳐져 있고 제 3의 다리가 건설될 예정이며 해저터널도 추진중에 있다고 한다.

 

해협의 왼쪽은 유럽(루멜리), 오른쪽은 아시아(아나돌루)이며 보스포러스 대교 우측이 우리에게 노래로도 많이 알려진 우스크달라인데 우스크달라는 6.25에 참전한 터키 군인들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크루즈는 신시가지의 중심 탁심광장에서 가까운 카바타쉬 부두에서 시작하는데

부두 바로 옆에는 돌마바흐체 자미와 돌마바흐체 궁전이 있어 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기도 하다.

 

<앞의 사원이 돌마바흐체 자미, 뒤로 길게 이어진 건물이 돌마바흐체 궁....>

 

<시계탑...  >


<돌마바흐체 궁전은 작은 만을 매립하여 바닷가에 지은 궁전이다. 건물 길이가 600m에 달한다.>


<돌마바흐체 궁을 지나니 멀리 보스포러스 대교(길이 1,000m, 1973뇬 개통)가 보인다.>

 

<올라가면서는 왼쪽편을 보기로 했다...  여기저기에 그들의 국기를 참 많이 게양하고 있었다.>

 

<헬기장까지 갖춘 '츠라안 팔라스'호텔의 화려한 건물... 돌마바흐체 비슷한 느낌이다.>

 

<보스포러스 대교 왼쪽의 오르타쿄이 자미... 바로크 양식으로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 안쪽 오르타쿄이는 젊은이와 예술인들의 구역.... 들려보진 못했다.>

<강변, 아니 해변의 고급주택....'알르'라고 부르는 오래된 목조 별장들이다.>

 

<수상에 띄워서 지어진 유명 나이트클럽과 고급 레스토랑.... 개폐식 차광막을 설치하였다.>

 

 

<타이타닉을 연상시키는 클래식한 유람선...>

 

<보스포러스 대교를 완전히 통과했다....>

<시민들이 나와서 낚시를 하고 있다.>

 

<요트 계류장.... 해상 자가용 주차장....  에게해로, 지중해로 이어지는 뱃길이다.>

유람선이 계속 나아가자 2번째 다리인 파티대교가 보이고 그 왼쪽 기슭에 루멜리 히사르 城이 보인다.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노리던 메흐멧 2세가 1452년에 단 4개월만에 건설한 요새이다.

루멜리는 터키의 유럽측을 말한다. 아시아측인 아나돌루에는 아나돌루 히사르가 1398년에 세워졌는데

이 사이가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가장 좁은 곳이다.

현재 루멜리 히사르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다.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인 메흐멧 2세는 1452년 루멜리 히사르를 건축하고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준비중이었는데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겨우 수천명이 구시가지 성벽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으나 골든 혼에 커다란 철쇄를 설치하여 군함의 진입을 저지하고 있었는바 메흐멧 2세는 육지에 나무를 깔고 소들로 하여금 궤도에 올려진 군함을 끌게하여 언덕을 넘어 다시 바다로 진수시키는 기발한 전술한 구사하여 함락시키고 말았으며 그후 메흐멧을 '파티(정복자)'라고 불리우게 되었는데 다리 이름도 파티대교이다.

 

<2번째 다리인 파티대교와 루멜리 히사르....>

 

 

<2번째 다리인 파티 대교.... 이쯤에서 유람선은 다시 뱃머리를 돌려 출발지로 회귀한다.>

 

<같은 해변가이건만 아시아쪽은 조용해보이고 차분해보인다....>


 

 

<첫번째 다리인 보스포러스 대교까지 내려왔다...  이 아랫쪽이 '우스크달라'이다.>

 

이쯤이면 짧은 크루즈가 끝나간다.  길게는 멀리 흑해 입구까지 올라간다지만 우리는 간단하게 돌아보았다.

내려오면서 보면 멀리 마르마라해 입구 쪽으로 등대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다.   처녀의 탑 (크즈 쿨레시)이다.

크즈는 처녀를, 쿨레시는 탑을 뜻하는데 그 옛날 이 지방의 태수가 사랑하는 딸이 16세가 되기전에 독사에 물려죽을것이라는 유명한 점쟁이의 예언을 듣고 재앙을 피하고자 바다위의 탑에 그의 딸을 살게 하였는데 마침내 안전하게 16세가 되었다.

태수가 생일축하 과일바구니를 보냈는데 그 안에 독사가 숨어 있어 결국 생일날 독사에게 물려죽었다는 슬픈 전설의 '처녀의 탑'

 

사실은 12세기에 비잔틴이 세운 요새로 오스만시대에는 지나가는 배에게서 통행세를 받던 감시소 겸 등대였다고 한다.

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운영된다고 하니 석양을 바라보며 멋진 식사를 하고픈 곳이다.

 

<처녀의 탑(크즈 쿨레시)....>



▶ 로쿰 등 잡화 쇼핑 [약 40~50분 소요]
공항으로 이동하여 [18:25] TK2018편(예정)으로 이스탄불을 출발 [19:50] 카이세리에 도착하여
-비행시간 (약 1시간 30분 소요)

※기상악화로 현지공항이 폐쇄된 경우 버스로 이동합니다.
신과 인간이 만든 환상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카파도키아로 이동합니다.

카파도키아의 동굴호텔로 이동하여 저녁식사 후 투숙합니다.


동굴호텔은 [확정]시에 동급의 다른 동급호텔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호텔 수배가 극심히 어려울 경우 5성급의 디럭스호텔로 불가피하게 변경될 수 있습니다.
호텔특성상 천연의 바위를 이용해 동굴형으로 만든 건축물이기에 난방면에 있어 다소 불편함을 느끼실 수 있사오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sophia21.com/tt/site/ttboard.cgi?act=read&db=wtravel&idx=36

성당의 본당

본당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적막에 둘러 쌓인 것 같은 거대한 내부 공간과 직경 33m와 높이 55m의 중앙 돔의 크기에 먼저 압도당한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없이 중앙 돔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나의 시선을 그렇게 끄는 것일까?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중앙 돔은 하단에 링을 형성하는 40개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띠를 따라 아래 석조물과는 분리된 듯 한 느낌을 주도록 의도적으로 계획되었다고 한다. 한 역사가의 말처럼, "이 돔은 마치 석조 구체 위에 놓여 있지 않은 듯, 지지체도 없이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구성의 불안정함은 차라리 두렵기까지 하다" 건축가들은 거대한 규모의 돔과 그것을 지탱하는 복잡한 내부 구조를 지닌 구조물이 빛줄기에 매달린 듯한 효과를 내도록 설계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성당 건축을 책임지고 지휘한 트랄레스의 안테미오스와 밀레투스의 이시도루스는 건축가가 아닌 수학자였단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기하학과 볼트 구조 이론에 뛰어난 두 명의 전문가를 고용하여 니카의 폭동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제국과 성당의 힘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짓도록 한 것이다. 그들은 기하학자들이였기에, 아치들은 앱스로, 돔은 작은 돔으로 열리며, 모든 벡터들이 허공에 몰리는 듯 보이도록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돔은 열주랑이 감춰진 21미터 높이의 기둥 4개와 4개의 거대한 아치에 의해 지지된다. 이 사이에 18미터 높이의 기둥 팬던티브가 놓이는데, 이것은 오목하게 파인 삼각형을 이루며, 돔을 이루는 원형의 밑변으로부터 하중을 정사각형의 바닥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교회의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대리석은 비잔틴 제국 내에 있던 많은 신전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본당의 녹색 대리석 기둥은 에페소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과 바알벡에서 가져온 반안 대리석들이다. 성 소피아에는 전체 107개의 기둥들이 있는데, 이 중의 47개는 아래층에, 60개는 위층 갤러리에 있다.

▲ 성당의 본당 모습(여행 당시 2층에 전시 중인 사진을 찍은 것임)

둥근판

우리는 성당 내부 기둥에 매달린 큰 원판을 볼 수 있다. 그 원판은 직경이   직경 7.5m이고 모두 8개이다. 원판은 19세기 술탄 압둘메지트의 통치 때 카자스케르 무스타파 이제트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 원판에는 알라, 선지자 무하메드, 초대 네명의 이슬람 칼리프인 아부바크르, 오마르, 오스만, 알리 그리고 알리의 아들들인 하산과 후세인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 성당 기둥의 큰 원판(직경 7.5m)

모자이크1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가 후진의 반원형 돔의 금색바탕 위에 새겨져 있다. 이것은 우상타파시대가 끝난 후 가장 처음 만들어진 인물화로써 867년 이전에 세워졌을 것이라고 한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성모마리아가 있는 반원형 돔의 옆의 아치에는 두 명의 대천사의 모습이 보인다. 왼쪽에 있는 천사는 단지 한쪽 발만이 보이나, 오른쪽의 천사는 훨씬 더 좋은 상태로 남아 있다. 오른쪽의 천사는 가브리엘로 여겨지며, 이 모자이크는 성모마리아의 것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2층 갤러리와 모자이크

남쪽과 북쪽에 있는 경사로 길을 통해 2층 갤러리로 올라갈 수 있다. 처음에는 남녀가 따로 예배를 드렸는데, 2층은 여자가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천장이 둥글게 만들어진 이 곳은 본당의 양옆 예배당(복도 부분) 전체와 내랑, 외랑 위에 만들어졌으며, 후진 맞은 편 중앙에는 왕비의 좌석이 있었다.

  갤러리의 남쪽 부분은 오토만 시대에는 성자의 방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대리석 문으로 구분되며, 이 곳에는 많은 모자이크 판넬이 있다. 특히 중앙에 세워진 대리석 문은 '천국과 지옥의 문'으로 알려져 있다. 콘스탄틴 포르피로제니투스 황제(913~959)에 쓰여진 의전책자에 따르면, 이 곳은 황제와 주교들이 참석하는 중요한 행사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1) 남쪽 복도의 계단 서쪽 모자이크

  이 문을 지나 오른쪽에 대단히 수준 높은 모자이크가 있다. 중앙에는 예수가, 오른쪽에는 성모마리아가, 왼쪽에는 세례 요한의 모습이 있다. 황금 바탕으로 된 이 판넬의 아랫부분은 현재 없어졌다. 이 판넬은 스타일과 품질에 있어서 성 소피아에 있는 모자이크 중 가장 뛰어나다. 이 그림에서 성모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심판의 날에 인류에게 자비를 베풀것을 간청하고 있다. 예수는 그의 발아래 의자로 보이는 모자이의 일부를 볼 때 보좌에 앉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한손에는 축복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성경을 들고 있다. 이 세 인물들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내포되어 있다.

 

2) 갤러리 가장 남쪽에 있는 황제와 왕비를 그린 2개의 모자이크는 실제 인물들의 초상화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1) 이들 중 북쪽에 있는 모자이크는 중앙에 예수가 있고, 그의 왼쪽에는 황제 콘스탄티누스 9세 모노마호스(재위 1042~55년)가 있고, 오른 쪽에는 황후는 콘스탄티누스 8세의 딸인 죠 여왕이다. 죠 여왕은 세 번 결혼을 했다. 그래서 그림과 황제의 이름은 그녀가 결혼할 때마다 변경되었다. 이 모자이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로마누스 3세 아르기루스와 처음 결혼했을 때이다. 두 번째 남편인 마이클 4세 파플라고니아와 재혼했을 때, 모자이크는 변경되었다. 현재의 모자이크는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인 콘스탄틴 9세 모노마호스이며 이다. 그들은 귀중한 보석으로 장식된 의식용 의상을 입고 있다. 황제는 중앙의 보좌에 앉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금이 든 주머니를 바치고 있다. 황제의 머리 위에는 '콘스탄틴 모노마호스, 로마의 황제'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죠 여왕은 황제의 기부를 인정하는 종이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예수는 단순한 청색 가운을 입고 있고 그는 장식이 된 보좌에 앉아서 한 손에는 심자가가 그려진 복음서를 한 손에는 그들에게 축복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 이 모자이크는 11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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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바로 옆에 있는 모자이크는 요한네스 2세가 성모마리아의 무릎에 앉아 있는 아기 예수에게 헌금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앙에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왼쪽에 금화 주머니를 안고 있는 듯한 요한네스 2세(재위 1118~43년), 오른쪽에 리본으로 묶은 기증서 같은 것을 들고 있는 황후 이레인이 있다. 이레인은 황제의 기부를 인정하는 종이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이들 모두 화려한 의식용 의상을 입고 있다. 이들은 실제 초상화이며 12세기에 만드러졌다고 한다.

출구

  내랑의 남쪽 문 위의 모자이크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그녀의 오른족에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왼쪽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습이 새겨진 모자이크가 있다. 이 문은 황제들이 성 소피아에서 열리는 의식에 참여할 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의 오른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자신이 세운 성 소피아의 모형을 들고 있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도시의 모형을 들고 있다. 그들의 이름과 공적이 각각의 옆에 새겨져 있다. 두 황제는 금으로 된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황금 왕관을 쓰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무릎 위에 아기 예수를 안고 중앙에 있는 보좌에 앉아 있다. 예수는 그의 신성을 암시하는 종이 두루마리를 들고 있고 한 손으로는 축복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신의 어머니'란 말의 머리 글자가 성모 마리아의 머리 양 옆에 쓰여 있다.
  여기에 있는 청동문은 타르수스(닷소)에 있는 헬레니즘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문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문의 장식이 관심을 끈다. 이 문은 우상타파 시대에 테오필루스(829~842)때 성 소피아에 설치되었다. 현재는 박물관의 출구로 사용되고 있다.

성소피아 분수

성당의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오면 아름답게 장식된 분수대를 볼 수 있다.  술탄 마흐무트 1세(1730~1754)는 성 소피아를 대단히 좋아해서 정원에 분수와, 초등학교, 그리고 시계실을 세웠다. 분수는 전적으로 튤립양식이며 터키 예술의 가장 좋은 본보기 중의 하나이다. 이 분수는 8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기둥의 8개의 넓은 아치를 받치고 있다. 이 분수에는 이 분수가 1740년에 세워졌다고 쓰여진 문구가 있다.

http://blog.naver.com/doheenp/50069673109

 

http://blog.naver.com/urbanlove/15001299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