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충(학명은 파스키올라 헤파티카 Fasciola hepatica)

2013. 10. 18. 17:03사소한 이야기들/이런저런이야기

간충(학명은 파스키올라 헤파티카 Fasciola hepatica)


간충의 순환은 자연의 가장 큰 신비에 속할 것이 틀림없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벌레는 양들의 간에 번식하는 기생충이다. 간충은 혈액과 간세포로부터 영양을 섭취하여 성충이 된 후, 그곳에서 알을 깐다. 하지만 간충의 알은 양의 간에서 부화할 수 없다. 기나긴 여정이 이 알들을 기다리고 있다.


알들은 똥과 함께 양의 몸 밖으로 나와 한동안의 성숙기를 거친 다음 부화하여 작은 애벌레가 된다. 이 애벌래는 새로운 숙주인 달팽이에게 먹힌다. 애벌레는 달팽이 몸 속에서 성장하여 우기에 달팽이가 내뱉은 끈끈물에 담겨 배출된다. 하지만 간충의 여정은 이제 반 밖에 끝나지 않았다. 


달팽이의 끈끈물은 하얀 진주 송이 모양으로 개미들을 유혹한다. 이 <트로이의 목마> 덕으로 간충들을 개미의 몸 속으로 들어 갈 수 있다. 간충들은 개미의 갈무리 주머니, 즉 <사회위>에 오래 머물지 않고, 그곳에 수 천개의 구멍을 뚫고 나오면서 갈무리 주머니를 체처럼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는 그 소동으로 개미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질긴 풀로 구멍을 다시 메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개미를 죽여서는 안된다. 양의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미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간충의 애벌레들은 성충이 되었고 이 성충들은 양의 간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간충의 성장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양은 곤충을 먹지 않는 동물인데, 그런 양으로 하여금 개미를 삼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간충들은 수세대에 걸쳐 그 문제를 탐구해야 했다. 양들은 신선할 때 풀줄기의 윗부분을 뜯어먹는다. 그러나 개미들은 따뜻할 때 둥지를 나와 풀뿌리의 신선한 그늘 안에서만 돌아다닌다. 시간도 장소도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가 한층 더 어렵다. 어떻게 양과 개미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간충은 개미의 몸 안 여기저기 흩어짐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가슴, 다리, 배에 각각 십여마리씩 들어가고, 뇌에는 한 마리만 자리 잡는다. 이 한마리 애벌레가 개미의 뇌에 뿌리를 박는 순간 개미의 행동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짚신벌레와 비슷하고, 조악하기 짝이 없는 단세포 동물에 가까운 이 작은 벌레가 이제부터 자기에 비해 너무나 복잡한 개미의 행동을 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간충에 감염된 개미들은 모든 모든 개미들이 잠든 밤에 개미집을 떠난다. 그리고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니다가 풀 꼭대기에 올라가 달라붙는다. 그렇다고 아무 풀에나 마구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양들이 가장 좋아하는 개자리나나 냉이 따위에 올라간다. 개미들은 거기에서 뻣뻣이 굳은 채로 풀과 함께 뜯어 먹히기를 기다린다.


뇌에 있는 간충이 하는 일은 그런 것이다. 즉, 양에게 먹힐 때까지 밤마다 자기의 숙주인 개미가 밖으로 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침이 되어 따사로운 기운이 다시 찾아오면 양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개미는 자기의 뇌를 다시 통제하고 자유 의지를 되찾는다. 그 개미는 자기가 풀 꼭대기에서 무얼 하고 있나 하고 의아해 하면서 재빨리 내려온다. 그런 다음 자기 둥지로 되돌아가 평소의 임무에 몰두한다. 그러다가 다시 밤이 오면 꼭두각시가 되어 되어 버린 그 개미는 간충에 감염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몽유병 환자처럼 밖으로 나가 양에게 잡아먹히기를 기다린다.


*인용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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