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더

2009. 5. 2. 00:41사소한 이야기들/영화

 

사랑을 말하지 못한 남자

그 사랑을 믿지 못한 여자..

누군가는 그랬다

사랑은 남자처럼..

이별은 여자처럼 하라고

 

영화는 사랑을...사랑이 무엇인지를...잔잔하게 보여준다

 

사람마다..이 영화속에서 무엇인가를 보았겠지

난..무엇을 보았지..

가슴이 시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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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의 영화이야기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은 이제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볼 수 있다. 청각적 상상력이 사라지고 시각적 지배문화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시대에서 누가 소리내어 글을 읽으려고 하겠는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베스트셀러 [더 리더 The Leader]는 마치 TV나 영화가 지배하는 영상 문화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마지막 레지스땅스처럼 보인다. 오직 소리로서만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어떤 정보도 신뢰성을 상실한다. [더 리더]에서, 마이클이 한나를 위해 읽었던 책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소리내어 읽었다는 행위가 중요하다.


2차대전 말기, 나찌의 친위대에 지원해서 유태인 죄수들을 감시하는 수용소 감시인으로 일했던 한나(케이트 윈슬렛)는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전차 매표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길을 가다 몸이 안좋아 구토를 하던 마이클을 한나는 도와준다. 그렇게 만난 15살 소년 마이클이 36살 한나를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욕망 때문이었다. 처음 여자의 육체를 접한 소년은 자신의 성적 욕망과 호기심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녀를 위해 책을 읽는다. 그녀는 침대 위에 엎드려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왜 한나는 마이클에게 섹스하기 전, 책을 읽게 했을까? 이 의문을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두드러지게 강조하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차탈레 부인의 사랑]이나 호머의 [오딧세이] 혹은 체홉의 소설들처럼 마이클이 읽었던 책들에게 어떤 두드러진 상징이나 심각한 의미망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읽었고 그녀는 귀를 기울여 들었다는 것이다. 사춘기 소년이 변성기의 목소리로 책을 읽는 것 속에는 하나의 세계에서 또 하나의 세계로 넘어가는 통과제의의 격정과 불안과 욕망이 숨겨져 있다.


한나가 마이클을 피해 그 도시를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눈치챘다면, 전차의 외근직에서 내근 사무직으로 승진 발령이 난 후 오히려 한나가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한 의미를 알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나가 나찌 친위대를 지원한 것 역시 당시 근무하던 회사의 사무직 승진 발령 이후라는 것과 같은 이유이며, 1966년 전범 재판이 열릴 때 유태인 몰살 후 결과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 필체를 조사하자는 판사의 말에 다른 감시인들과 함께 기소된 한나가 모든 범죄를 혼자 감당하는 것과 동일궤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당시 법대생의 신분으로 방청석에서 재판과정을 바라보던 마이클은 비로소 한나가 자신을 떠난 이유를 짐작하며 그녀가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댓가도 치르려고 한다는 것을 안다.


마이클과 한나가 처음 만났던 1958년부터 한나가 유태인 300여명을 불타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되어 전범 재판을 받던 1966년, 그리고 마이클이 한나에게 녹음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하는 1978년과 한나가 가석방되는 1988년 등 수 십년 동안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원작과 달리,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더 리더]는 현재의 시간 사이에 과거의 시간들을 파편적으로 끼워 넣는 구성적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라는 뛰어난 데뷔작을 만들었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소설을 매개로 각각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잇는 여자들의 삶을 하나로 엮어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더 리더]에서도 시간의 선형적 배열을 벗어나 비선형적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40여년에 이르는 원작 이야기의 방대한 시간적 흐름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서 긴장감 있는 변형을 시도했지만 영화 [더 리더]는 선명하게 압축되는 내러티브의 촛점과 밀집도를 잃었다. 원작이 불러 일으켰던 많은 논란들, 문맹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사회적 시각이나, 인간적 자존심과 존엄성을 자극하며 나찌 친위대에 대한 교묘한 미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정치적 시각, 그리고 유태인에 대한 모멸적 언급이 들어 있다는 인종적 시각까지 영화는 표현한다. 그리고 책 읽어주는 행위를 통해 형성된 소년과 중년 여성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은, 훨씬 선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아카데미가 한나 역의 케이트 윈슬렛에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올바른 결정이었다. 그녀는 사춘기 소년의 욕망을 받아들이는 중년 여인의 미묘한 시선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한 인간의 깊은 내면적 갈등, 그리고 20년이 넘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마이클이 보내준 테이프를 재료로 필생의 컴플렉스를 극복하다가 가석방을 맞는 노역까지 뛰어나게 연기하고 있다. 고전적 단아함 속에 상승에의 욕망과 하강에의 불안을 섬세한 무늬로 표현하는 그녀의 성숙된 연기는 [더 리더]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지만, 어린 마이클 역의 신예 데이빗 크로스의 힘 있는 연기도 시선을 붙잡는다.


[더 리더]는 죄와 용서라는 고전적 명제부터 사춘기의 불안과 성적 욕망, 가족간의 갈등을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다. 값싼 정서적 반응을 유발해서 동정심을 자극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마지막 장면의 이성적 접근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나가 남긴 유산을 둘러 싸고 전개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원본보기 ㅣ http://cafe.daum.net/moviehu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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