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약국과 슈퍼가 동거한다

2011. 2. 7. 15:48pharm/데일리팜

[4] 대부분 슈퍼나 대형할인 매장에 손님 편의용 약국 있어


미국에서는 슈퍼에서 OTC의약품을 판다. 그러나 수퍼 안에는 대부분 약국이 있다. 미국에서는 편의점에서 타이레놀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낱알포장이다.

미국 체인 약국에서 식료품, 소형 가전제품, 화장품, 계절상품, 장난감, 사무용품, 헤어용품 및 기타 잡화를 판다. 미국 체인약국에서 처방약으로 인한 마진은 2~3%에 불과한 반면 기타계절상품 및 잡화로 인한 마진은 15%가량 된다. 따라서 환자가 처방약 기다리는 동안 약국 안을 둘러보다가 과자를 한봉지 사든, 세제를 하나 사든, 뭐든 한가지는 사들고 나가야 실제 이익이 나는 구조다.

인턴하던 시절에 내가 근무했었고 약사면허를 받은 이후 스탭으로 들어앉았던 지점은 남가주 넘버원 월그린으로 하루 처리하는 처방전 수가 바쁜 날은 약 1000건, 한가한 날은 700건 정도였다. 인턴 시절에는 약사 일을 덜어주기 위해 약 내보내면서 복약상담하는 아우윈도우 (Out-Window)에 있기 마련. 그 약국에서 독감이 유행하는 겨울철이면 약받아가려는 줄이 너무 길어서 마치 크리스마스 쇼핑센터를 방불케 했는데 그 날도 오후에 퇴근 길에 약 받아가려는 환자 줄이 약국 벽을 따라 화장실 문까지 늘어서 있고 약국 바깥의 스토어 매니저까지 약국 안으로 들어와서 약 내보내는 일을 돕고 있었다.

그 때 한 환자가 처방약 하나 받아가면서 처방전 기다리면서 쇼핑한 온갖 잡화를 카운터에 올려놨다. 그 환자 뒤에 기다리는 여러 환자들의 눈초리에 처방약은 약국에서 계산하고 나머지 잡화는 약국 밖프론트에서 (점원에게) 계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 환자가 불평하면서 프론트로 카트에 한가득한 잡화들을 가지고 나가자 스토어 매니저로부터 "처방약 팔아서는 남는 마진이 별로 없다. 실제 체인약국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환자가 사들고 나가는 잡화들이니 아무리 줄이 길어도 기꺼이 계산해주어야 한다"며 한마디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체인약국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세월이 가는 것은 약국 바깥 매장 풍경으로 느낀다. 한해는 발렌타인 데이로 시작한다. 초코렛, 테디베어, 빨간 하트가 가득한 각종 상품들이 약국 밖에 즐비하다가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와 부활절 토끼와 관련된 상품들로, 이후 수영 및 물놀이 용품, 그리고 할로윈,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선물 및 선물포장 제품이 대미를 장식하면 한해가 끝난다. 한국도마찬가지겠지만 브랜드 파워가 강한 상품들보다는 영세상인과 스토어 매니저가 독립적으로 계약하여 얻는 계절 상품 및 기타 잡화가 마진이 높기 마련이다.

미국의 앨버슨(Albertson's), 세이프웨이 (Safeway) 등의 체인슈퍼 안에는 손님의 편의를 위해 대개 약국이 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코스코 (Costco)나 타겟 (Target) 같은 대형할인매장에도 대부분 약국이 안에 있으며 OTC 의약품을 대형포장으로 사면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텔레비전 광고나 의사의 권고로 OTC 의약품을 사야하는 경우 미국에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약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철자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약국에 와서 약사를 찾고, 약사가 이름을 제대로 정정해주고 진열된 위치를 알려주어도 찾지 못해서 약사가 약국 밖으로 나가서 손수 건네주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요즘 한국에서 OTC 의약품의 슈퍼판매에 대한 찬반논쟁이 팽팽하다. 혹자는 미국처럼 슈퍼에서 OTC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데 한국과 다른 의료제도 및 약국운영관련법을 가진 미국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국은 일단 근본적으로 (잔인한) 사보험제도다. (미국의 사보험제도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또한 미국에서 약사가 아니더라도 약국을 개설할 수 있으나 오직 약사만이 약국 열쇠를 소지하며 약국을 관리할 수 있다. ( 만약 약국 오너나 약국 밖 스토어 매니저가 부득이 하게 열쇠를 보관해야한다면 약사가 열쇠를 일정한 컨테이너에 넣고 봉인을 한 후 서명을 한 후 건네주고 열쇠를 수령할 때에는 약사가 봉인을 풀고 서명한 기록을 장부에 남겨야 한다. 약국 오너나 스토어 매니저가 재난 등 응급사태 등을 제외하고 약사없이 어떤 경우에도 약국을 출입하거나 약국을 오픈해서는 안된다.)

동유럽의 사회주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사보험제도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너그러운) 국가의료보험제도다. 유럽연합 정부도 한국처럼 인구는 점점 노령화되는데 어떻게 하면 보험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이다. 약 십여년 전에 유럽여행을 갔을 때 들어가본 유럽의 약국 풍경은 한국과 비슷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은 슈퍼와 약국이 한방을 쓰는 반면 유럽은 한국처럼 약국과 슈퍼가 완전히 딴방을 쓰는 셈이라고 할까.

슈퍼와 약국이 동거하는 미국의 제도를 슈퍼와 약국이 별거하는 한국의 제도와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의약분업이 정착되어가는 시점에서 한국의 의료제도하에서 현존하는 여러 요인을 고려했을 때 약사 역할이 얼마나 제대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환자가 약사를 (의약품을) 필요로 할 때 적시에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