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자들은 어떤 와인을 좋아할까

2008. 3. 16. 00:28사소한 이야기들/wine & 음식

보르도산 1등급인 '샤토 라피트 로쉴드'를 가장 좋아하고,한 달에 평균 7만3000원어치의 와인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청담.압구정 지역의 가장 오래된(8년) 와인 전문숍인 갤러리아 '에노테카' 단골 고객 3500명의 구매 행태를 조사한 결과다. 50명의 VIP 고객만 따로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진다.한 개인이 와인을 구매하는 데 한번에 가장 크게 쓴 돈은 1300만원에 달한다.그는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 33병을 한꺼번에 사갔다고 한다.VIP 고객의 한 달 평균 구매 금액은 65만원.VIP 회원들의 직업을 보면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가장 많고,의사가 다음을 차지했다.

에노테카에서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와인(금액 기준)은 '샤토 라피트 로쉴드 2004'로 집계됐다.한 병당 39만원인 이 와인은 보르도의 5개 1등급 와인 가운데 하나로,1년간 2200만원어치가 팔렸다.2위는 샴페인의 원조격인 '동 페리뇽 외노테크 1993'이 차지했다.이 밖에 이탈리아와 칠레의 대표선수급 와인인 '사시카이아 2003'과 '투핸즈 벨라스 가든 쉬라즈 2005'도 각각 5위와 10위에 올랐다.

수량별 집계에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단맛(sweet) 와인이 인기를 끈 것으로 조사됐다.이탈리아산 '브라이다 모스카토 다스티'(2만9700원)가 작년 한 해 동안 605병이 팔려 1위를 차지했다.한국인이 선호하는 칠레산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도 2001년 빈티지가 4위에 올랐다.

이재운 에노테카 소믈리에는 "VIP 고객들은 미국의 컬트 와인처럼 희귀한 와인이나, 유명하긴 하지만 국내에 잘 들어오지 않는 와인들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예컨대 한 해 4000상자(상자당 12병)만 생산하고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100점 만점을 준 '샤토 페트뤼스 2000'(630만원)이 올 설에 5병 중 3병이 팔려 나갔다.올 1월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온 미국 나파밸리 지역의 최고급 컬트 와인인 110만원짜리 '콜긴 나인 이스테이트 레드 2004'도 총 6병 중에서 4병이 판매됐다.이 와인은 로버트 파커가 "내가 지금껏 본 가장 완벽한 와인 양조를 위한 열반의 경지"라고 극찬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이한 점은 남녀 와인 마니아들의 구매 성향이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갤러리아 카드를 소지한 에노테카 고객을 조사한 결과,여성이 63%로 남성(37%)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하지만 매출액 비중에선 오히려 남성 61%,여성 39%로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

이재운 소믈리에는 "여성들은 와인 숍을 자주 찾고 비교적 저가 와인을 선호하는 데 비해 남성들은 한번에 고가 와인을 구입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예컨대 고객 수 비중에선 30대 여성이 24%로 1위인 데 비해 매출액을 기준으로 보면 1위는 30대 남성(29%)으로 뒤바뀐다.연령별 고객 비중은 30대가 41%로 가장 많았고 △40대 27% △50대 15% △20대 10% △60대 이상 7% 순이었다.

VIP 회원들의 절반가량은 기업체 CEO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소믈리에는 "고가 와인일수록 선물 수요가 많다"며 "올 설에 한 기업 고객이 페트뤼스 한 상자를 원해서 가까스로 구해주기도 했다"고 소개했다.VIP 회원 중 한 명인 양욱 갤러리아백화점 사장은 주로 소믈리에가 권해주는 대로 마시는 편이지만 최근엔 이탈리아산 '니포자노'를 여러 번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노테카는 본래 일본의 와인 판매 체인점이다.2000년 1월 갤러리아백화점이 일본 업체와 제휴해 명품관에 68평 규모로 숍을 열었다.와인만 취급하는 전문숍으로선 에노테카가 국내 처음이다. 에노테카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점이다.이 소믈리에는 "일본 에노테카에서 물건을 직접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예컨대 국내 수입상을 통해 들여온 이탈리아산 '귀달베르토 2002'의 백화점 판매가는 19만2000원이지만,최근 에노테카가 일본에서 직수입한 '귀달베르토 2004'는 7만9000원에 팔리고 있다.빈티지 편차를 감안하더라도 에노테카의 판매가가 훨씬 낮은 셈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